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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삼위일체 대축일(가해) 강론: 박 블라시오 신부 07-10-14 22:04: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505   
강론 - 삼위일체 대축일 2005.5.22. 본원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매일 여러 차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를 바칩니다. 우리가 매일 십자가를 그으며, 성호경을 바칠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구원과,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됩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요즘 신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도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 협력해서 일이 잘 되었을 때 ‘세 박자 네 박자가 다 잘 맞았다’ 혹은 ‘모든 것이 삼위일체로 딱딱 맞아떨어졌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삼위일체”란 말을 자세히 따지고 보면 이해하기가 보통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세 분이 아니시고, 한 분이신데, 성부, 성자, 성령 세 이름을 갖고 계시고, 세 분 인가 싶은데, 유일하신 한 분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구분을 할 수 있으되 분리될 수는 없는 하느님에 대한 이 신비가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이것을 얼마나 이해하기 힘들었는지는, 아오스딩 성인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강론 때 이 이야기까지 다 할 수는 없고...


전례나, 교회 안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을 구별하여 조금씩 다르게 표현을 합니다. 즉, 사랑을 베푸시는 성부, 은총을 내리시는 성자, 친교를 이루시는 성령; 혹은 창조의 업적은 성부에게, 구원의 업적은 성자에게, 성화를 이루는 업적은 성령에게 돌리기도 합니다. /또 다른 식으로 구분하여, 아버지는 우리 ‘위에’ 계시는 하느님, 아들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성령은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라고도 합니다.

어떻게 구별하든 간에, 하느님은 한 신적 실체 안에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 구별되시는 분이라는 것이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강론을 준비하면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어떻게 설명해 볼 수 있을까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가위-바위-보 놀이”가 생각났습니다. 독일에도 이런 놀이가 있는가 해서 독일 수사님에게 물어보니까, 독일에는 이런 놀이가 없다고 하네요!!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모두 있어야 합니다. 만일 가위가 없거나, 바위가 없거나,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놀이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세 가지가 다 있어야, 이기기도 하면서, 지기도 해서,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바위가 가위보다는 세지만, 보자기를 만나면 맥을 못 춥니다. 보자기는 바위를 감싸버릴 수는 있지만, 가위가 오면 꼼짝을 못합니다. 가위는 바위 앞에서는 맥을 못추지만, 보자기를 만나면 펄펄 납니다.

그래서 두 명이 하든, 10명이 하든 가위바위보 게임은 스릴이 있는 겁니다. 어느 하나도 독불장군 같은 것은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역시 서로 배제하거나,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세 위격이 ‘사랑’이라는 끈으로 완전하게 일치하여 계시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혼자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아 줄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너와 내가 서로 주고받는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짝사랑’은 눈물겹도록 슬프긴 하지만, 사랑이 아닌 이유입니다!!

우리가 가위-바위-보를 할 때 어떻게 합니까? “가위 바위 보”를 외치면서, 내 손을 뒤로 감춥니까? 그렇게 하지 않죠? “가위! 바위! 보~~”를 크게 외치면서 동시에 손을 앞으로 내밉니다. 혼자서 ‘가위 바위 보’를 할 수는 없습니다. 함께 놀아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신 분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할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은 성부-성자-성령 세 위격이 서로 완전하게 사랑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모든 사람들과, 우주의 만물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기에, 인간과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당신 아드님을 통해 구원하셨고, 우리를 거룩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삼위일체 대축일의 신비를 거행하면서 묵상해 보아야 할 점 인 것 같습니다.


나 혼자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사랑’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삼위일체를 다른 식으로도 설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집”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 위(位)가 ‘한 집살이’를 하고 있는 집입니다. 우리들 가정 역시,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한 집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수도원이라는 이 공동체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수도자들이 ‘한 집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다’는 오늘 복음 말씀과 상통하는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라는 말씀은, 원문대로 직역하자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가 이루는 이 집은, 완전한 사랑으로 넘쳐나기 때문에, 모든 공동체, 모든 가정의 가장 완벽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를 분양할 때 미리 ‘모델 하우스’를 공개하지요~ 바로 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야 말로 공동체의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랑의 모델 하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사랑의 모델 하우스’를 가장 닮은 공동체가 어떤 것이냐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수도 공동체’라고 합니다. 가정은 혈연이라는 공통점이라도 있지만, 수도 공동체는 하느님 부르심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건설하고 성장시키기 때문입니다. 성삼위가 이루시는 이러한 사랑의 관계 즉 친교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람들이 바로 ‘수도자’들이고, 그래서, 수도자들을 ‘친교의 전문가’라고도 합니다.


친교의 영성이란 다름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관상할 수 있는 마음가짐입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 옆에 있는 형제, 자매의 얼굴이 이 삼위일체의 신비로 환히 빛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형제, 자매, 가족들과 기쁨과 고통을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진실하고 심오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친교의 영성이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해 주는 것, 다른 말로 남을 위하여 나의 공간을 내어주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형제의 짐을 나누어 짊어지게 됩니다.


성삼위의 사랑이 빠져버린다면, 가정이나 수도원이나, 여타 인간의 공동체는 외형은 그럴 듯하지만, 알맹이가 빠져버린 빈 껍데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Starting Afresh from Christ, 26 참조).

내 생각과 내 계획으로 가득 차서, 다른 사람이 들어설 공간이 없는 곳에서는 ‘한집살이’의 의미를 깨칠 수 없습니다. 말은 이렇게 간단하게 할 수 있지만, 뭐 하나라도 실천하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것들을 자꾸 잊어버리고 맙니다.


동네 꼬마들이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는 것을 보거나, 길가에 모델 하우스를 보게 되면, 다시금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친교의 전문가로 변모되는 그곳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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