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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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부활 낮미사 (2005,3,27): 인 끌레멘스 원장 신부 07-10-14 22:01: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630   
어제 성토요일 오후 산책 중에 수도원 뒤 과수원 앞에 있는 목련을 봤습니다. 목련은 수줍은 듯이 하얗고 약한 꽃망울을 부끄럽다는 듯이 살포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수줍은 꽃망울을 보고 봄을 느꼈습니다. 이제 꽃샘추위도 봄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갔습니다. 참으로 봄입니다. 올 겨울이 유난히 추워서 그런지 모르지만, 봄이 더욱 반가운 것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봄과 함께 항상 주님의 부활을 맞이합니다. 만물의 순환에 따라 해마다 부활을 지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부활의 날이 밝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본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전갈을 받고 베드로와 주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가 예수님의 무덤에 달려가는 장면을 들었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과 주님을 감쌌던 염포가 놓여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실망감과 절망감으로 어깨가 축 쳐진 제자들의 모습을 능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당황스러움과 실망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요한 복음사가는 말하기를, “사실 아직도 그들은 주님께서 죽은 이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서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또 오늘 복음에는 없지만 복음 마지막 구절 바로 다음에 “제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빈 무덤만을 발견한 제자들은 십자가에 처형되신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부활은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또 우리가 흔히 성화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 승리의 깃발을 드시고 무덤을 박차고 당신 모습을 환히 사람들 앞에 내보이신 것도 아닙니다.

아무도 모르게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깊은 침묵 속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분은 이렇게 탄식할 수 있습니다. “부활인데 난 왜 이리 기쁘지 않고 덤덤할까, 남들은 부활이라고 들떠 있는데 왜 나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날과 똑같을까? 그렇다면 내 신앙이 내 믿음이 잘못된 것인가”


저는 어제 밤 부활성야 미사의 빛의 예식에서 성당으로 들어오면서 저의 손에 든 초와 촛불을 바라봤습니다. 아주 작고 가냘 폈습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꺼질 정도로 약하디 약한 불꽃이었습니다. 이 촛불에서 제 자신의 처지를 제 자신의 상태를 보았습니다. “나도 이 촛불처럼 너무나 약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의 눈길은 자연히 파스카 초에 갔습니다. 부제의 손에 들린 파스카 초는 크기도 크고 불꽃도 크게 타올랐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약한 내 자신이 파스카 초의 인도를 따라 어둠이 깔린 길을 자연스럽게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본 것이었습니다.


어떤 글에서 이런 문장을 보았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대단한 용기와 인내를 전제로 한 결심에서 나온 고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십자가에 처형되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우리는 과연 이런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은 이런 고백을 할 만큼 우리 자신은 씩씩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당당히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밤 우리 손에 든 촛불은 보잘 것 없이 나약하기만 했지만, 파스카 초가 상징하는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신 분이십니다. 강하신 분께서 믿음과 사랑이 약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타고 있는 이 부활초의 불꽃은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드러내는 불길입니다. 모든 의심과 허무와 실망을 송두리째 태워버리는 결코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꽃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이란 어떤 증거나 표징을 통해서 확인되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부활은 사랑 안에서만 확인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당신 생명을 십자가에 바치기까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의 힘으로 주님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지도 체험하지도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주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부활이 그저 냉랭한 지식의 차원에 머무를 뿐입니다.


무덤이 없으신 유일한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 베네딕도는 규칙서에서 우리 수도자를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수도자나 평신도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곧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길을 나선 사람이란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허리를 펴고 어깨를 펴고 용기를 냅시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신 주님, 저희 속에 웅크리고 있는 온갖 형태의 연약함을 사랑의 불꽃으로 태워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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