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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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사순 4주일(가해) - 실로암의 소경: 박 블라시오 신부 07-10-14 21:59: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617   
입당
오늘은 기쁨의 주일, Laetare 주일이라고도 하는 사순 제4주일입니다. 사순절의 중간에/ 세상의 빛이시며, 죄로 눌린 우리들을 해방시키시는 주님의 신비를 묵상하며 기뻐하는 날입니다. 미사의 입당송도 ‘기뻐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오늘 미사는 우리의 세례를 기념하며, 성수 예식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빛으로 불리우던 날들을 기억하고, 그 빛 속에 머물 수 있도록 청하며 이 거룩한 신비를 거행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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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저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한번도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부모님이나 동네 사람들이 나에게, 내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을 할 때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 죄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이 나를 잘 보살펴주셨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배워야했습니다. 언제까지나 부모님이 제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앉아 동냥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마냥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그 날도 내가 동냥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몇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축축한 흙을 내 눈에 바르고는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누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별일 다 보겠다~고 생각하면서,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었더니, 내 눈에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게 아니겠습니까!

마치 눈 앞에 뭐가 붙어 있다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으면서, 땅과 하늘과 나무, 사람들이 내 눈 앞에서 어른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 이게 보는거구나. 지금까지 소리로만 느꼈는데, 누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이제는 똑똑히 볼 수도 있게 되었구나~~~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펄쩍펄쩍 뛰면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모님과 이웃들에게 내가 마치 캄캄한 동굴과 같은 어두움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생각하니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 하지만 동네로 돌아오니까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눈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말고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나를, 이 분들은 이리저리 쳐다보더니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우리 동네 사람들보다 더 꽉 막힌 사람들이었습니다. 내가 평생 소경이었다가 눈을 뜬 것이야 말로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진흙을 개어 눈을 뜨게 했다는 말을 듣고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했다면서/ 온갖 터무니 없는 말로/ 저를 고쳐주신 분을 죄인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저한테서, 그리고 우리 부모님한테서 무슨 꼬투리를 찾아내려고 했지만, 이 놀라운 사건 앞에서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이 사람들이 저를 고쳐주신 분을 죄인으로 몰면 몰수록, 제 마음 속에는 이 분이야 말로 참된 예언자시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한번도 저를 고쳐주신 분을 뵌 적은 없지만, 내 눈을 만지시던 그 분의 손끝이 자꾸만 내 마음속에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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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길게 읽은 복음의 내용을 그 소경의 입장에서 다시 따라가 보았습니다. 태생 소경이 보게 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 앞에서도, 바리사이들은 기뻐하기보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흙을 이기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온갖 터집을 잡습니다. 뭔가 잘못을 찾아내기 위하여 소경의 부모들도 부르고, 소경에게 심문도 하지만 그럴수록 진실은 더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소경이 치유되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 바리사이들, 집안 사람들...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 믿음을 갖게 된 사람은 바로 치유된 그 소경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다운 예언자로 인정하였고, “주님 믿습니다”하면서 그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주님의 빛이 비쳐오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주님이 막혀 있던 내 눈을 만지시며, 이제 빛을 보아라고 말씀하시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신자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세례를 받았을 때, 어떤 봉사직으로 불렸을 때, 수도자로 불림을 받았을 때, 인생의 중턱에서 혹은 황혼기에서 봉헌회원으로 불림을 받았을 때, 큰 고통과 절망 속에서 뭔가 희망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빛을 만난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 내 인생의 신비들을 그냥 어슴프레 풍문으로만 듣고 있었다면,, 이제는 주님의 주시는 빛으로 확실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이러한 확신에서 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치유된 소경은 육체의 눈뿐만 아니라, 믿음의 눈도 열려 주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하지만 믿음의 밝은 눈을 갖고 있다고 자처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겉모양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입니다. 밝은 빛이 비치면, 어두움은 있을 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어두움을 주님의 빛으로 채우며, 남은 사순시기 동안 우리의 믿음의 눈이 주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청하는 시기가 되도록 합시다.

오늘 제2독서의 바울로 사도의 말씀을 한번 더 들어보도록 합시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대 위에 그리스도 빛나시리라”(에페 5,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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