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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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06 11:22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에서 머튼의 업적 - 머튼의 불교 이해 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905   추천 : 0  

3.2. 禪의 무아(無我)와 그리스도교의 참된 자아(The True-Self)

         

Anatta (禪의 無我)에 대한 머튼의 이해는 그의 관상과 영적인 여정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에고(ego), 거짓 자아(the false-self), 혹은 경험적 자아로부터의 초연함을 통해 참된 자아 (the true-self)를 찾는 것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그는 오늘날 우리는 경험적 자아가 진리와 영을 향한 확고부동한 지적 과정의 출발점이라고 가정하는 데카르트 학파의 자기-실현(self-awareness)이라는 유산에 전염되었다고 주장했다.[1]


데카르트에 반대하여, 그는 수도승적 영성의 전통은 우리의 경험적 자아를 초월하는 것이 그 중심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표면적인 ’[혹은 ego]는 우리의 참된 자아가 아닙니다. 데카르트의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것보다 관상을 더 고립시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2] 데카르트의 자기-실현을 넘어, 머튼은 “‘에고-자아에 대한 전체적 질문과 인간’ (참 자아)는 동서양 종교 사이의 대화를 위해 너무도 중요한 문제라고 보았다.[3]


머튼의 禪과의 만남은 우리의 내적 혹은 참 자아는 우리 존재의 한 부분이 아니며이것이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상으로서 간주되거나 연구될 수 없다는 결론을 짓게 했다.[4] 게다가, 그는 하느님이 활동하시는 장소로서 자아가 더 이상 남겨져 있지 않을 때, 비로소 (禪의 용어로 無我) 우리의 참 자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5] 이 진리는 바로 空이다.[6] 그런데, 어떻게 머튼이 주체-객체의 관계가 없는 禪의 무아’(無我)와 하느님 안에서의 참 자아를 찾는 것을 어울리게 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머튼은 내적-자아의 발견 안에서 그리스도교에서 객체와 주체, 즉 하느님과 인간으로 나눠지는 것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다시 말해, 禪은 해탈의 체험을 통해 주체-객체의 이원론의 즉각적인 사라짐을 추구하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존재와 영혼의 존재 사이에, 전지전능함의 와 우리 자신의 내적 사이에, [주체와 객체 사이에] 형이상학적으로 무한히 갈라진 틈이 존재한다.”[7] 하느님과 자아의 형이상학적 공백에도 불구하고, 머튼은 영혼과 하느님 사이의 신비로운 일치가 영적 체험 안에서나눠지지 않은어떤 의식으로 형성되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기 때문에 동양의 신비가가 자아(Self)로 묘사하는 무엇은 서구의 신비가가 하느님(God)으로 묘사하는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곳에 있다고 주장했다.[8] 그는 육화 안에서그리스도는 우리 중 한 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자아가 되었기때문에 주체와 객체의 이원론을 초월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9]


자신의 에고(ego)로부터의 초연함과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kenosis)의 모방에 의한 자아의 잃어 버림을 통하여, 자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분의 자유와 사랑 안에서 살 수 있게 된다.[10] 깨어난 사람은 주체와 객체의 구별이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살아가는 이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살아가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갈라. 2:20)[11]


, 그리스도교의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넘어 감으로써 머튼은, 참 자아가 가장 높은 실재와 함께 융합되거나 하느님의 無 (Nothingness of God) 안으로 사라지는 초월적 신비 체험을 통해, 에고-자아(ego-self)가 초월함으로써 드러날 수 있는 참 자아와 무아(無我) 사이의 연결점을 발견하였다. 불교 안에서 무아의 이해를 통해, 그는 초월적 자아 혹은 무아는 자기-비움 혹은 자기 비하의 길을 통해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길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불교-그리스도교 대화는 반드시 참된 자기-초월과 해탈의 영역에서 찾아야 하며, 이것은 궁극적인 토대 안에서 그리고 가장 높고 가장 진정한 헌신적 사랑 안에서 의식의 변형에 대해 찾는 것이라고 믿었다.[12] 그래서 그는 자기-무사무욕(無似無慾)” 혹은 자기-잃어버림을 통한 자기-비움혹은 자기-변형은 불교-그리스도교 대화를 위한 기본적 원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1] MZM, 26 [Emphasis added].

[2] NSC, 7-8.

[3] ZBA, 77.

[4] IE, 6-7.

[5] ZBA, 10.

[6] 앞의 책, 74.

[7] IE, 12. 불교는 자신의 자아의 주체-객체의 관계는 하나가 될 것이며, 해탈에 도달하면 이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 가르친다. William Johnston머튼이 선은 모든 범주와 모든 이원론을 넘어 간다고 한 진술은 매우 명확하다. 부정신학적 체험(apophatic experience)의 어떤 영역들 안에서 주체-객체 관계는 사라지며, 이것은 단순히 하느님을 체험하는 다른 방법이다라고 주석했다. See William Johnston, Christian Zen (New York: Harper & Row, 1971), 23.

[8] IE, 13.

[9] SS, 381. 머튼은 “‘참 자아 (the true Self)는 주체와 객체가 하나라는 것 안에서 의식의 기초적 통합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가장 지고한 善은 가장 지고한 실재 (reality)자아의 융합이다라고 설명한다. See ZBA, 69.

[10] See Thomas Merton, Life and Holiness (New York: Herder and Herder, 1963), 60. James Finley 는 참 자아를 찾기 위한 수행자의 분투는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관상을 통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었을 때 일어나는 축복이며, 이것은 성령의 일치 안에서 아버지께 대한 그리스도의 관상에 참여함으로써 가능해진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Finley의 관점에서, 참 자아를 찾음으로써 머튼은 하느님과 같이 될 수 있었고, 하느님의 활동이 될 수 있었다. See James Finley, Merton’s Palace of Nowhere: A Search for God through Awareness of the True Self (Notre Dame: Ave Maria Press, 1978), 107.

[11] See ZBA, 5, 75, 117. 머튼은 모든 인간적 표현을 넘어가는 역설에 의해, 하느님과 내적 자아는 오직 유일한 를 가지는 듯하다. 그들은 (神的 은총에 의해) 마치 하나의 인격인 것처럼 있다. 그들은 하나로서 숨쉬고 살고 행동한다라고 설명하였다. See IE, 18.

[12] AJ, 316.


관리자 19-04-06 11:27
답변  
머튼 독자 여러분께서 다음 글을 기다리셨을 텐데 며칠 사이에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

주제 자체가 조금 어렵기 때문에 다소 딱딱할 수 있지만, 글을 반복해서 읽으시다 보면, 그리스도교의 관상의 영성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위의 내용을 이해하시고 나면 다른 신학이나 영성적 글을 읽는 데에도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마치 집을 짓기 전에 기초를 다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박 안셀모 올림
https://blog.naver.com/bundobusan  (제가 있는 부산 분원 블로그에 오시면 더 많은 머튼에 대한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