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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27 08:41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에서 머튼의 업적 - 머튼의 삶과 불교 2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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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변형의 기간: 1959-1968

         

내적 체험(1959)의 저술 후부터 아시아 여정 전까지(1968), 불자들을 향한 머튼의 태도는 완전히 변형되었다. 그는 더 이상 불자들을 이교도들로 간주하지 않고, 친구와 형제로 받아들였다. 그는 열정적으로 禪과 대승 불교를 연구하였기에 이 기간은 분명하게 禪을 통한 변형의 시기”(1959-1968) 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959년에 사막의 지혜 (The Wisdom of the Desert)라는 저서의 출판에 이어, 머튼은 적극적으로 불교와 불자들, 특히 서방에 禪을 해설해 준 스즈키 박사와의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는 스즈키 박사의 작품의 고유함은 아시아의 사상가가 서구의 언어로 자신의 깊고 오래된 전통을 소통할 수 있다는 명쾌함에 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1] 그는 스즈키의 저서들을 읽고, 그와 서신왕래를 하며, 그리고 마침내 1964년에 뉴욕에서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눔으로써 禪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 졌다. [2]

 

머튼은 또한 존 위 박사(Dr. John C.H. Wu), 하인리히 두모룰린 신부 (Fr. Heinrich Dumoulin S.J.), 마사오 아베 (Masao Abe), 마르코 팔리스 (Marco Pallis) 그리고 틱낫한 (Thich Nhat Hanh)과 그 외 다른 이들과 만남을 가졌고, 서신 교환을 했으며, 아시아 전통에 관련된 많은 책들과 아티클들을 저술하였다.[3]  불자들과 불교 학자들과의 서신왕래는 禪에 관한 초기의 그의 생각을 수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이제 禪이 일종의 개인주의적이고 주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자기-만족의 미묘한 형태도 아닙니다…. 이것은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영의 내면의 세상으로 단순히 물러나는 것도 아닙니다라고 진술하고 있다.[4]

 

불자들과의 대화의 영향 아래에서, 禪에 관한 머튼의 풍부한 이해는 그의 영적 변형, 특별히 불교의 비-이원론적인 생각을 통한 관상과 활동의 통합의 영역에 기여하였다. 사회 정의와 다른 아시아 종교들에 관한 그의 관심은 이러한 확장된 세계관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5]

         

불자들과의 우정관계를 통하여, 머튼은 공통된 영적 기후” (a common spiritual climate) 안에서 禪과 그리스도교 사이의 종교 간 대화의 가능성을 보았다.[6] 그는 禪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성장과 통함을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깊은 영적인 방법으로 현대화된 서구 문화의 변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7] 그는 동료관계 안에서 공통된 영적인 영역을 禪 불자들과 나누는 것은 그의 동시대인들의 의식의 변형과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선언” (Nostra Aetate) 역시 머튼의 불교와의 만남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가톨릭 교회는 다른 종교들 안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 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2)는 공의회의 진술을 강조했다.[8] 그 진리의 빛 안에서, 다른 전통, 특히 불교와 머튼의 대화는 이러한 전통에 대한 위대한 존중과 깊은 이해를 통해 더욱 가속화되었다.

 

 

2.3. 집중과 깨달음의 시기: 1968

         

집중과 깨달음의 시기는 머튼이 아시아를 여행한 19681015일에서 1210일까지의 두 달의 기간에 해당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얼굴을 마주하고, 수도승 대 수도승으로서 불자들과 만났다.[9] 아시아에 머무는 동안 소승 불교와 티벳 불교 승려들과의 만남은, 아시아 여정 전에 대승 불교에 국한되었던 불교에 관한 그의 지식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머튼은 인도의 망명지인 다람살라(Dharamshala)에서 만났던 달라이 라마를 포함한 티벳 린포체들(Rinpoches)의 깊은 영성에 특히 감명을 받았다. 소승 불교의 땅인 스리랑카의 폴론나루와에서 머튼은 부처님의 상들 앞에서 영적인 깨달음의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아시아에서의 이 두 달의 기간을 집중과 깨달음의 시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가 이 여정 전에 티벳 불교에 관한 몇몇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당시는 아직 실질적으로 티벳 불자들이 미국에 이주하지 않은 때였기에, 사실 머튼이 이들을 만날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나, 아시아 순례의 과정에서 그는 1950년대 말 중국 침략자들 때문에 티벳 문명이 파괴되자 인도로 망명을 온 다양한 티벳인들과 라마들(Lamas), 린포체들을 만날 기회를 가졌다.

         

그가 만났던 첫번째 티벳 구루(Guru)는 머튼이 대화를 나눈 이들 중에 가장 젊은 툴쿠(tulku) 였던 쵸얌 트룽파(Chogyam Trungpa) 린포체 였다.[10] 19681019일 머튼이 인도에 도착한 날, 그들은 캘커타의 센트럴 호텔(the Central Hotel)에서 만났다. 머튼은 그의 일기에서 쵸얌 트룽파는 완벽하게 멋진 인물이었습니다. 젊고, 자연스럽고, 가식이나 교활함 없이, 깊이 깨어난 지혜그리고 진정한 영적인 스승이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보여준 자신의 명상과 이야기들은 비범한 것이었습니다.”[11] 트룽파 역시 머튼의 열린 마음과 깊은 영성에 감동되었고, 마치 오래된 친구, 진정한 친구같이 그를 느꼈다.[12] 트룽파와 머튼은 영적 수행과 삶이 개인의 위치와 평판과 정체성의 증진과 확신을 위해 사용되는,” “영적 물질주의(spiritual materialism)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13]

 

이 만남에서이 두 명의 진정한 인간이 참된 친구로서 즉각 서로를 알아보았기 때문에, 상대를 변화시키거나 개선시키는 것 없이도 자신의 존재 그대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4] 이는 자신의 전통 안에서 관상의 깊은 영역으로 들어간 이들이 어떻게 영적 자기 중심주의를 초월해 가는지에 대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우정관계 안에서, 트룽파는 머튼에게, 자신이 영적 물질주의를 극복하도록 가장 좋은 가르침과 영감을 준, 사하나(Sadhana) 텍스트의 복사본을 선물했다.[15] 트룽파와의 만남을 통해 머튼은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에 있어서 우정 관계와 공통된 영적 관심사의 가치를 재확인하였다.

         

며칠 후, 머튼은 닝마(Nyingma) 라마와 함께 족첸(Dzogchen) 스승이며 다람살라 가까이의 비르(Bir)에 티벳 수도원을 설립한 초클링(Chokling) 린포체를 만났다.[16] 그들은 해탈과 환생에 관한 질문을 주고받았다. 초클링은 머튼에게 자신의 영적 스승을 찾고 인도에 있는 몇몇 쿨쿠들을 만날 것을 제안했다. 초클링이 머튼에게 마음의 기원에 관한 선문답과 유사한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머튼이 침묵으로 대답한 것에 만족한 것 같았다.[17] 이에 대해, 머튼과 티벳 불교의 전문가인 유딧 심머-브라운(Judith Simmer-Brown)초클링 린포체의 테스트와 머튼의 질문은 나중에 샤트랄(Chatral) 린포체와의 만남을 위한 완벽한 준비였다.”고 해설한다.[18]

 

초클링은 죽음을 통한 궁극적인 본성의 깨달음과 연관된, 비밀리 전해 내려오는 수행인 포와(phowa)라고 부르는 의식전이에 대해 머튼에게 소개했다.[19] 머튼은 이 티벳 린포체로부터 의식적 죽음의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새로운 길에 대해 배웠다.

         

114, 머튼은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와 첫번째 만남을 가졌다.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했고, 상호 존중의 분위기 안에서 진행되었다. 그는 달라이 라마를 매우 견고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관대하고 따뜻한 사람이며 매우 일관된 논리의 사상가로 묘사했다.[20] 그들의 대화는 철학과 종교, 특별히 명상의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머튼은 족첸(Dzogchen)에 관한 달라이 라마의 명확한 설명에 감동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마댜미카(Madhyamika, 中觀派), 중도 (middle way)에서 튼튼한 기초를 얻을 것을 그에게 조언했다.[21] 머튼이 티벳 신비주의에 관한 개인적인 우려를 표명하자, 달라이 라마는 티벳 신비주의에 관해 서구적 관점은 부분적이고 왜곡되었다고 대답을 하였다. 이 첫 만남은 관상에 관한 대화는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의 익숙한 주제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116, 머튼은 달라이 라마와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그들은 인식론과 삼매 (samadhi), 티벳 불교의 다양한 이론들, 그리고 서구 토미스트의 지식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그들의 대화는 삼매와 명상에 대한 질문들로 되돌아왔다. 머튼은 명상은 영적인 자유와 의식의 변형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에 수도승들에게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달라이 라마는 그에게 티벳 명상의 자세들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통제된 정신 집중의 감각안에서 삼매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마음 그 자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22] 머튼이 그의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달라이 라마로부터 배운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티벳 불자들은 마음에 관한 예리하고 정교하고 과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명상으로 실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신비주의는 아주 단순한방법들 안에 있습니다만, 달라이 라마는 전적인 헌신, 지속적인 노력, 경험된 지도, 실질적 훈련, 그리고 지혜와 방법의 조화 없이는 영적인 삶에서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항상 그리고 모든 곳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23]

 

         

머튼은 티벳 명상과 신비주의에 대해 배우는 것을 즐겼다. 그들과의 생생한 대화를 통해, 그는 내적인 삶에 관한 달라이 라마의 생각은 매우 굳건한 토대들 위에 그리고 수행의 과제들에 대한 진정한 깨어남 위에세워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24] 그는 세상의 문제들과 인간의 문제들 안에서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초연해지는 것과 세상에 대한 참여 사이에 달라이 라마의 통합적인 관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머튼은 118일에 있었던, 달라이 라마와의 세번째 만남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는 서구의 수도생활에 관해 많은 질문들을 했다. 그리고 머튼은 방콕의 회의에서 하게 될 연설의 주제인 마르크주의와 수도생활에 관하여 달라이 라마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 후, 그들은 다시 지난 모임의 주제였던 마음에 관해 다시 토론했다. 머튼은 의식으로서 반야 (prajna) 혹은 禪 (dhyana) 이든, (sunyata)에 대한 반야의 관계이든 간에, 오히려 마음에 대한 기술적 논의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당시를 묘사하고 있다.[25] 깊은 영적인 수준에서의 그들은 매우 따뜻하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위대한 존경과 자애 안에서 머튼은 그들 사이에 실질적으로 영적인 유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지는 다른 린포체들과의 만남들은 티벳 영성에 대한 머튼의 올바른 인식을 더욱 깊게 해 주었다. 1116일 족첸의 살아 있는 위대한 스승들 중 한 명인 샤드랄 린포체를 그의 은둔처에서 만났다. 그들은 어떤 장벽도 없이 즉시 서로를 알아보았다. 머튼은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이렇게 기록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난 이들 중에 가장 위대한 린포체였고 너무도 인상적인 인물이었습니다.”[26] 샤트랄 역시 즉시 머튼의 깊은 영적인 수준을 알아보고누가 먼저 해탈에 이르는지 보도록 하지요[27] 라고 말하면서, 머튼을 타고난 부처” (rangjung sangay)라고 칭했으며, 다음 생애 안에 혹은 이번 생애에 완벽한 해탈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28]

 

그들의 가장 많은 대화는 족첸에 관한 것이었으며, 부활한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교의와 완전한 깨달음을 향한 그들의 길에서 현재의 위치와 느곤드로(ngondro, 전례적 수행의 토대)에 대한 네 가지 예비적 수행에 관하여 서로 나누었다. 샤트랄의 완전한 단순함과 자유는 집중적인 수행인 족첸을 통하여 티벳 불교의 영적인 깊이의 생생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머튼은 샤트랄을 닝마파(Nyingmapa, 티벳 불교의 주요 네 학파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학파) 라마들 가운데 최고라고 여겼고, 좀 더 자주 만나기를 희망하며 심지어 자신의 스승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머튼이 티벳 불자들에 의해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저는 지금까지 아시아 수도승들과의 접촉이 상당한 결실과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서로를 매우 잘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티벳인들이 매우 생기 넘치며 일반적으로 잘 훈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명상과 관상에 있어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이 모두 성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확실히 그들은 보통이 아닌 질과 깊이의 사람들이며, 매우 따뜻하고 굉장한 민족임에는 틀림없습니다.”[29]

 

         

아시아에 머무는 동안, 머튼은 동서 종교들 사이의 수도승들 간의 종교 간 대화가 반드시 필요함을 더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관상에 기초한 수도승 간의 대화는 초월적인 자유와 비전에 대한 진정한 보편적 의식의 성장을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30] 그러나 예상치 못한 그의 죽음이 동양의 수도승들과의 대화의 시작을 단절시키고 말았다.



[1] ZBA, 63. Thurston겟세마니 수도원에서의 기간 동안, 아마 당시 영어로 번역된 불교 저서들 가운데 禪의 대승 불교 전통이 가장 접근하기 용이했기 때문에, 그의 연구가 禪에 집중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스즈키가 禪에 대한 그의 이해를 형성시켰다는 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See Thurston, “Unfolding of a New World,” 17.

[2] 머튼의 스즈키와의 서신 왕래는 1959년에 시작되어 1966년 스즈키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3] These included The Way of Chuang Tzu (1965), Mystics and Zen Masters (1967), Zen and the Birds of Appetite (1968), “Christian Culture Needs Oriental Wisdom” (1962), “Zen: Sense and Sensibility” (1963), “The Zen Revival” (1964) and “The Zen Insight of Shen Hui” (1965).

[4] MZM, 13. 머튼은 불자들에 대해 그들이 단순히 세상으로부터 물러난 이들도 아니며무아지경이나 열반이라는 종국적으로 완전히 부정적인 상태에 들기 위해 명상에 몰두하는 것도 아니다. 불자들의 마음 충만함’ (마음 챙김, mindfulness)은 삶에 대한 경멸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삶에 대해 극도로 세심히 배려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See ZBA, 93.

[5] See Larry A. Fader, “Beyond the Birds of Appetite: Thomas Merton’s Encounter with Zen,” Biography 2, no. 3 (May 1979), 234.

[6] ZBA, 138.

[7] 앞의 책, 59.

[8] MZM, ix.

[9] Thurston, “Unfolding of a New World,” 18.

[10] 툴쿠(Tulku) 자신의 이전 생에서 깨달음의 길에 멀리 도달한 이의 환생으로 알려진 티벳 불자를 일컫는 호칭이다. See AJ, 409.

[11] 앞의 책, 30-31.

[12] Chögyam Trungpa, Collected Work of Chögyam Trungpa III, ed. Carolyn Rose Gimian (Boston: Shambhala Publications, 2003), 477.

[14] Steven R. Shippee, “Trungpa’s Barbarians and Merton’s Titan: Resuming a Dialogue on Spiritual Egotism,” Buddhist-Christian Studies 32 (2012), 1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