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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23 16:31

[기사] 한국 고전영화광들에게 '전설'이 된 파란 눈의 신부님

글쓴이 : 포근한신사

林세바스찬 神父의 한국 사랑, 영화 사랑
1966년 한국 들어와 선교… 영화 보며 한국어 배워… '광주' 관련 고초 당하기도
십계·거울·일곱째 봉인… 비디오·DVD 줄줄이 출시… "좋은 영화는 영성 깨우쳐"

■전쟁과 소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초토화돼 가던 1942년, 독일 남동부 소도시 밀텐베르크의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칠판 위에 걸려 있던 사진을 가리켰다. "자 여러분, 저분이 누구신지 한 사람씩 말해 볼까요?"

"히틀러 총통 각하십니다." "위대한 지도자십니다…." 그때 7세 소년 하인리히의 입에서 나온 말에 젊은 여선생이 사색이 됐다. "저 사람이 전쟁을 일으켰어요. 나쁜 사람이에요."

그날 밤 하인리히네 집 현관을 담임교사가 두드렸다. 그는 떨며 부모에게 말했다. "로틀러(Rothler)씨! 저랑 같이 게슈타포에 끌려가고 싶으세요? 다시는 그런 얘길 못 하게 하세요!"

하인리히의 아버지는 철도 기술자였다. 어느 날 출근해 보니 유대인 동료가 시체가 돼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나치의 짓이었다. 그때 이후 하인리히는 아버지가 몰래 라디오로 영국 방송을 듣는 모습을 보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승(連勝)을 거두고 있다는 독일 방송 뉴스는 죄다 거짓말이었다. 매일 연합군 폭격기가 나타나면 지하실로 대피해 숨죽이던 1945년까지, 소년을 지탱해 준 것은 불의(不義)에 대한 분노였다.

■영화광, 제3세계로 떠나다

"영화에 관심을 가진 게 언제부터였습니까?" 갑자기 임세바스찬(74) 신부의 눈이 반짝였다. 임인덕(林仁德·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은 1960년 뷔르츠부르크대 신학과를 졸업한 뒤 뮌헨대에서 종교심리학을 전공했다.

1963년 영화학 강의 중 눈앞에 펼쳐진 게 신(神)과 구원의 문제를 다룬 잉마르 베리만의 '침묵'이었다. 영화는 신학(神學)도 전달하지 못할 메시지를 사람 마음에 심어줄 수 있는 도구가 아닐까?

▲ 임세바스찬 신부가 낡은 영사기에서 뽑아 낸 필름을 손으로 잡아 보고 있다. 이곳은 예전 비디오테이프를 만들기 위해 아날로그 작업을 하던 경북 칠곡 왜관읍 베네딕도미디어의 스튜디오다. / 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고전영화 마니아가 된 신학도는 밤마다 예술영화 전용관을 찾았다. 1965년 사제 서품을 받은 하인리히는 수도원 교육 중 원산(元山) 교구 출신 신부를 만났다. 1949년부터 5년 동안 북한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사람이었다.

―어떤 얘기를 들었습니까.

"그는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한국인들이 얼마나 쾌활하고 친절하고 똑똑한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당시 서유럽 학생들이 제3세계에 관심이 많던 분위기이기도 했지만, 저는 한국에 마음이 끌렸어요."

―남동생도 아프리카 선교사였다면서요.

"잠비아였습니다. 두 아들이 동시에 타국으로 떠났지요. 눈물을 쏟으시던 어머니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1966년, 임 신부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2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는 중에서도 중요 교재로 삼은 것은 역시 영화였다. 극장을 찾아 한국 영화를 본 그는 깜짝 놀랐다.

―왜 그러셨습니까?

"생각보다 굉장히 수준이 높은 영화들이 많았거든요. 코미디 영화에도 사회비판 의식이 있었어요. '공처가 3대'(유현목 감독, 신성일 주연의 1967년작) 같은 영화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영화와 선교가 접점을 찾은 겁니까.

"왜관 수도원 기숙사 사감 때 학생들에게 판화 실습을 시켜 보니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났어요. '한국인들에게 미디어를 통해 선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스틸 사진을 환등기로 보여주면서 선교를 했습니다."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았던 그의 사목(司牧) 인생이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다. 그는 유신(維新) 직전인 1971년부터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까지 분도출판사 대표를 맡았다. 분도(芬道)란 베네딕도의 한자 표기다.

많은 사람들에게 분도출판사는 이해인 수녀의 시집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 '꽃들에게 희망을' 같은 스테디셀러로 기억되지만, 아슬아슬한 '이념성 종교서적'들도 많았다.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 카마라 주교의 '정의에 목마른 소리'가 분도출판사에서 나왔죠? 당시 상황에서 나오기가 힘든 책들이었을 텐데요.

"1977년 '해방신학'을 낼 때 문화공보부에서 온 전화를 받았어요. '공산주의 책이니 하나도 팔지 말고 다 파기하라'고 윽박지르는 거였습니다. 인쇄소 책임자가 고교 동창인 문공부 부장을 구슬리는 동안 수도원 옥탑방에 몰래 3000부를 숨겨 뒀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엄청나게 주문을 해왔습니다."

―왜 그 책들을 냈나요?

"당시엔 한국에 자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권이 무시당하는 상황에선 영혼도 없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북한에 대해선 오히려 호의적이었죠."

■고전영화의 대부(代父)

1980년 5월, 임 신부는 막 광주(光州)를 벗어난 한 대학생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증언을 녹취해 테이프와 전단지를 서울로 보낸 뒤 신자들에게 나눠주게 했다. 이게 화근이 돼 신부들 7~8명이 잡혀갔다.

―임 신부님도 고초를 당하셨습니까?

"신부 한 사람이 제 이름을 댔나 봐요. 사복경찰 한 명과 군인 열 명이 수도원으로 와 네 사람이 제 팔다리를 붙잡고 나가더니 군용 차량 안으로 던지더군요."

―1982년부터는 안동에서 '영화포럼'을 열었지요?

"'워터프론트' 같은 사회비판 영화나 베리만의 '산딸기' 같은 고전영화를 틀었죠. 기독교·불교 신자, 문인들까지 모여 김치 막걸리를 놓고 밤늦게까지 토론도 했습니다."

포럼은 5년 만에 중단된다. 승용차를 몰고 지리산 성당으로 가던 국도에 비가 퍼부었다. 앞선 트럭을 추월하려는 순간 맞은편에서 버스가 나타났다. 그는 4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았다. 밖에선 그의 관(棺)을 짜놓고 있었다.

살아난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전과 달랐다.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웠고 남은 시간은 소중했다. 1993년 베네딕도미디어 대표가 된 그의 눈에 띈 것은 비디오테이프였다. "직접 영화 비디오를 출시해 일반에 보급하자!"

"도대체 베네딕도가 뭐 하는 데냐?" 한국에서 유일하게 고전영화 붐이 불던 1990년대, 마니아들은 경악했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십계', 타르코프스키의 '거울' '솔라리스', 베리만의 '일곱째 봉인', 펠리니의 '길'….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료프'에서 흑백으로 펼쳐지는 예술가의 구도(求道)를 보고 사람들은 감동했다. 캐나다의 장인(匠人) 프레드릭 백이 6년 동안 혼자서 색연필로 그렸다는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은 환경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임세바스찬 신부는 영화광들 사이에서 '전설'이 됐다. 그러나 마니아들은 소수였고 50여 편의 영화는 수익과 거리가 멀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성 베네딕도 수도원 내 스튜디오에는 낡은 편집기와 영사기, 모니터, VHS 플레이어와 테이프들 사이에 DVD케이스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 베네딕도미디어가 낸 DVD 표지.

―요즘엔 DVD를 내는데, 여전히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계약한 뒤 제작을 거쳐 홍보까지 도맡아 하시는군요.

"유럽에서 좋은 영화를 발견하고 계약하려는데 소문을 들은 한국 업자들끼리 경쟁이 붙어 8000달러에서 10만달러까지 가격이 올라간 적도 있었어요. DVD가 좋은 매체이긴 하지만 불법녹화라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건 정신적인 재산을 훔치는 거예요."

―DVD케이스가 많이 보이는데, 직접 비닐 포장까지 하시는 겁니까?

"여기 직원이 네 명밖에 없어서요."

―고전영화들이 정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출시작 중에 자크 리베트의 '잔다르크'가 있지요. '중세적 정신'을 5시간 동안 말해주는 영화입니다. 그걸 다 본 사람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이 뭔지 알게 됐다'고 합니다. 종교영화 아니라도 좋은 예술영화는 영성(靈性)을 발견하게 해 주지요. 자유와 사랑, 우정과 양심 같은."

―그런 가치관은 보통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습니까?

"대구 시내에 갔더니 극장에 온통 유치한 액션물뿐이더군요. 예술영화나 책을 보지 않고 이런 영화만 보면 온 나라의 정신이 퇴보할 수가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어린이 영화도 많이 내셨죠.

"'그리스도교 2000년'은 '다빈치 코드' 같은 책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제대로 말해 주는 작품입니다. 최근에 낸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일제시대 한국의 모습을 담은 무성영화입니다. 독일 베네딕도회 신부가 1925년에 촬영했다가 나치 치하에서 사라졌던 필름인데 수도원 지하실 벽 안에서 발견됐다가 이번에 복원됐어요."

―이제 정치적인 발언은 하지 않는 것 같은데.

"한국은 많이 변했습니다. 그런데…1997년에 북한에 가 봤어요. 환상이 깨졌습니다. 1966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무척 가난했는데 북한은 그때의 한국보다 더 못하더군요. 지도자를 신(神)으로 떠받드는데 민중에 대한 관심은 없고 나라 전체가 감옥이었어요. 한국의 친북(親北) 세력들이 북한에 가서 실상을 보면 마음이 바뀌게 될 겁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다섯 편만 꼽는다면?

"'안드레이 루블료프' '미션' '파리 텍사스' '아마데우스', 그리고 또…."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 작품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fits)'을 좋아한다면서요.

"(당황하며) 아 그건… 그냥 레크리에이션…. 먼로 작품 중에서 제일 연기가 뛰어난 게 그 영화예요."



바람 09-11-23 20:22 ㅎㅎㅎ ㅎㅎㅎㅎ!!! 신부님! 고맙습니다. 이 기자 덕분에 웃었고, 또 신부님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과 늘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ㅎㅎㅎ ㅎㅎㅎㅎ!!! 신부님! 고맙습니다. 이 기자 덕분에 웃었고, 또 신부님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과 늘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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