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한국진출 100주년

축하미사 강론

왜관 수도원 대성당, 2009. 9. 25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 우리는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하느님께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에 감사드리고 그동안 수고해주신 성 베네딕도 수도회 수사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이 축복을 모든 한국교회가 함께 기뻐합니다. 이런 경사스런 기회에 베네딕도회 총 아빠스님들의 모임을 한국에서 갖게 되어 국제적인 경축이 되어 더욱 뜻이 있습니다.

베네딕도회의 지난 100년 역사는 우리나라 역사, 한국교회 역사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베네딕도의 역사는 한국 근대사의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우리나라에는 조선대목구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뮈텔 주교님께서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에 직접 찾아가셔서 조선교회의 지도자들을 양성할 학교를 세워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오틸리엔 수도원의 놀벨트 웨버 아빠스님께서 흔쾌히 받아들임으로써 한국교회의 첫 번째 남자 수도회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보다 10년 앞서 민 주교님은 주교좌성당을 세우기 위해 한국교회에 유래 깊은 명례방 터를 성당 자리로 잡고 싶었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궐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높은 자리라 하여 건축허가를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러자 주교님은 그 터에 몰래 분도 패를 묻으면서 일이 성사되면 대성당 안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분도성인 상을 세우기로 마음으로 서원하였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일이 잘 성사되었고 대성당 안에 분도성인 상이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이 있은 다음 10년 후에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그것도 독일의 수도원을 초청하는 일이 성사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회의 가르침은 개화기를 맞이하였던 한국사회의 가치관을 깊게 심어주었습니다. 지금의 혜화동 언덕에 세워졌던 서울 수도원은 숭신학교와 숭공학교를 설립하였고 특히 당시 최초의 체계적인 기술학교였던 숭공학교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양성된 장인들은 한국사회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특히 베네딕도 회원들이 이북 함경도의 함흥교구와 덕원수도원 자치구에서 또 북간도의 연길교구에서 이룩한 사목적 성과는 가히 놀랄 만합니다.

1945년 해방 이후 공산당에 의해 많은 수도자들이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박해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모든 힘을 들여 이루어놓은 그동안의 성과들이 파괴되고 사라져 갔습니다. 이를 지켜보아야 했던 형제들의 고통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느님은 베네딕도회원들에게 더 큰 일을 시키시기 위해 그처럼 혹독한 시련을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이북과 만주에서 복음전파와 신앙을 증거 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36명의 자랑스러운 선배 순교자들의 시복 절차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독일 수도자들이 4년 6개월간 “죽음의 행진”이라 하는 가혹한 집단수용소 생활을 하고 석방된 다음 몸도 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한에 내려와 지금의 왜관수도원을 세웠습니다.

한국수도자들과 독일수도자들 모두의 신앙과 봉사와 열정과 인내를 높이 평가합니다.

“안으로는 수도승, 밖으로는 사도”라는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여러분은 이것이 또한 동시에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증거인 지를 잘 알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100년의 역사 중에 이곳 왜관에서의 역사가 57년이나 차지합니다. 그동안 베네딕도 회원들이 선교분야와 교육 분야 그리고 복지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와 공헌은 실로 놀랍습니다.

왜관 수도원은 가장 가난했던 1950년대와 60년대에 가장 어려운 이웃이었던 나환자들을 위한 정착촌을 4군데나 세웠고 현재도 결핵환자 요양소, 노인 마을을 설립하여 돌보고 있습니다.

또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노동자들을 위해 또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사랑의 봉사를 해왔습니다.

베네딕도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와 신학을 한국교회에 소개하고 뿌리내리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큰 공입니다. 대부분의 신학생들이 분도출판사에서 발간된 책들을 가지고 공부하였습니다. 훌륭한 신학서적들을 발간함으로써 한국교회 신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2년 5개월 전에 있었던 수도원 화재라는 엄청난 어려움도 꿋꿋이 극복하여 이렇게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더 뜻 깊은 날입니다.

여러분은 베네딕도회 한국진출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과거를 되돌보고 앞으로의 새로운 100년을 향해 설계하였을 것입니다.

100년 전 베네딕도회가 이 땅에 발을 디딘 당시와 지금의 한국교회의 상황은 너무나 크게 달라졌습니다. 한국교회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또 우리 순교자들의 전구로 양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에 맞추어 신자들의 믿음의 질적 성장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수도회들의 역할이 꼭 필요하며, 남자 수도회의 맏형인 베네딕도회의 모범이 기대됩니다.

여러분이 실시하고 있는 수도생활체험 학교나 성삼일전례피정 또는 성탄전례피정은 신자들로 하여금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귀중한 체험을 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들, 마음의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 하느님을 참으로 찾는 사람들이 수도원을 찾아와 영적으로 힘과 용기와 기쁨을 얻는 은총의 오아시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곳 수도원에서 기도하고 수련하는 모든 형제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를 위하여 선한 인성과 깨끗한 양심 그리고 성숙한 인격 형성에 힘쓰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한 수도자로서의 자기 발전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이 땅에 복음을 잘 전파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사도적인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이 땅에 그리스도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공동체 건설에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100주년을 기념으로 더 많은 젊은이들이 성소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수도회 형제들과 은인들에게도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