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의 겨울은 감춤의 미학이었다

                                                                               *글 / 규헌 김영옥(시인). 사진 / 이정.

                                                                               *08.11.20.목.해-눈.e조은산악회. 

 

양광이 밝은 동지 스무날,

새벽이 열리고 하늘이 눈을 떠 눈 온다던 일기 예보는 설램 반 다행 반,

길용리무진은 한양으로 어둠을 가른다.

거기 도봉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이 기다린다는 산행대장님의 귀띰을 듣고서.

밝아지는 차창으론 논틀에 안겨있는 빈 논바닥,

묶이지 못한 지프라기들 허허롭게 하늘바라기가 쓸쓸하다.

일곱시 반, 휴게소에서 뜨거운 황태탕으로 속을 달랜 후

다시 의정부로 들어서서 열시무렵 안골로 산행을 시작한다.

 

작년 북한산 탐방에 이어 오늘 도봉을 오르니

삼국이 각축을 벌이고 조선 오백년 도읍지였으니

천 년 사직의 한양 둘레를 대충은 아우른 셈이 된다.

 

얼마를 갔을까 땀이 속옷을 적시려 하자

겉옷을 벗어 베낭에 넣고 사패산에 오른다.

선조가 사랑하는 공주를 시집보낼 때 사위에게 딸 잘 봐달라

마패와 함께 하사한 산이어서 '임금이 내린 패' 라는 뜻의 사패산,

여기서 바라본 수락산과 미리 올려다본 도봉산의 웅장함,

그리고 안골계곡과 수려한 범골능선이 한없이 눈길을 잡아끈다.

다시 도봉을 향한다.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의 기암들이 기다리는, 천년 사직 지킴이들이다.

허나 바위의 석질石質이 그러한지, 서울 인구가 수없이 쉬지않고 오르내려

닳아서 그런지, 매끄러워 자칫 잘못하다간 큰일 날 위험한 암릉들이다.

쇠줄 손잡이가 있으나 암릉은 없는 곳이 많다. 있어도 줄 보다는 쇠기둥을 잡아야 심지다.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 덩어리로 곳곳에 흙무덤들이 있어 거기에만 숲이 이루어진듯한 암릉산이다.

사패능선을 다 지나면 포대능선이 나오고 포대능선에서 도봉능선을 바라보니 암봉의 장관이 눈을 잡는다.

포대능선이란 '포대'는 대공포가 있는 곳이라 그 이름이 붙은 것인데

포대 설치 이전에는 다른 이름이 있었을터, 조선시대 그 이름을 다시 찾아 불렀으면 한다.

 

도봉능선을 지나면 다시 오봉능선을 지날 것이다.

헌데 도봉이 가까워지자 나는 깜짝 놀란다.

'아~, 저것은 무엇인가, 아니 누구인가?, 달마인가 불상인가?

아님 이 산에서 수도한 후 깨달음을 얻었을 자운이란 고승 얼굴인가?'

하늘 높이 찌른 봉우리 하나 그것은 자운봉739.5m, 영낙없는 근엄한 얼굴 형상이다.

옆으로 그어진 지긋이 감은 눈, 대머리에 몇 올 나부끼는 누런 억새무리 머리털,

그리고 긴 코, 양 옆에 드리운 느러진 귀,

명상에 잠긴 상반신의 부처도 같고 달마도 같은 석상이 버티고 앉아있다.

뒤따르는 J에게 말하자 그의 눈에도 사람얼굴이 틀림 없단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풍상에 깎이었을까,

더 이상 석삭을 껍질이 없어 알맹이로만 남은 저 형상,

그것은 또 얼마나 오래 하늘을 이고 인간세상에 자비를 내리려는가..........

한참을 대면하고 몸 비틀어 유격훈련을 한 후, 

신선대 구름 속에 올라 구름을 헤치고 자운스님, 달마를 가까이 보려하자

자운봉은 이내 분가루 같은 눈을 내린 눈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눈은 길도 감춰버린다. 천지간에 모든 것들이 모습을 감춘다.

 

도봉은 감춤의 미학을 연출한다. '감춤' 과 '숨음'은 무엇일까.....

한문책 천자문에 겨울동 冬 다음 글자는 감출장 藏 이 나온다.

겨울은 감춤의 계절이란 뜻일거다.

숲은 산흙을 감추고 눈雪은 숲을 감추고 그리고 추위는 씨앗을 감추고,

천지간의 모든 것은 숨 죽여 감춤의 자세로 겨울을 나야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 날것을,

그 감춤의 시간을 참고 기다린 후라야 다시 씨앗은 싹을 틔울 것임을,

그러나 감춤은 멈춤이 아닐것이다. 두엄의 감춤 속에는 숙성의 발열 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듯이

숲도, 얼음장으로 감춘 흐르는 물도, 잎을 내려 발뿌리를 감춘 나무도,

그리고 겉마음으로 감춘 우리들의 속마음도

봄의 새로운 용솟음을 위해 감춤의 미학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하늘은 겨울 한 동안을 '감춤'이란 미학으로 생명들에게 명령한다.

헌데 인구 증가는 겨울에도 비닐하우스의 진행형을 쉬지 않는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늘의 지시인 감춤이 깨뜨려짐을 어떻게 할것인가.

어디까지 늘어나고 어디까지 생산해야 사람의 입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감춤' 원칙을 지키지 않고 흘러가는 문명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것은 두려운 인류의 역사가 될것인가..............

하늘이 감추면 생명들은 숨어야 마땅한데, 그것이 안됨은 두려운 일이다.

도봉은 감춤이 내리자 군말 없이 숨음의 미학을 연출하는데.

 

도봉이 눈구름 속으로 숨자

우리는 오봉능선을 포기한 채 감추어진 길을 가다가 길 없는 길,

생길을 만들고 알바를 시작한다. 산길이 사르르 눈으로 감추어진 것이다.

저 아래 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쳐 송추계곡을 물으니

아 -- 그들도 알바하는 우리 일행인것을, 모두들 한바탕 웃고 웃는다.

'짱구7'님이 카메라를 메고 앞뒤에서 찍으면서 즐겁게 간다.

사진을 찍어 추억을 만들어준다는 것도 어려운 봉사활동이다. 손도 시려운데.

딱 열네 명이다. 오늘의 산행 절반. 산새도 겨울을 재잘거리며 희색 만면이다.

역시 동행이 많으면 더 안심이다. 자운봉의 자비 얼굴이 든든하기도 하지만........

난 산에만 오르면 사람을 찾아낸다.

지난번 백양사 가인봉을 바라봤을 때는 누워있는 미인을 찾았는데

여기선 달마의 얼굴을 보았으니 담엔 또 누구를 만날까,

누구가, 어디서 날 기다리고 있을까... 그가 나를 기다릴까 내가 그를 기다릴까...

그 둘의 눈맞춤은 어느날로 운명지어져 있을까? 참 재있다..... 내일이....

송추계곡을 어느만큼 내려와 올려다 보니

남성적인 오봉과 여성적인 여성봉이 보인다.

헌데 서운한 것은 여성봉의 여자 거시기를 못보고 온것이다. (어디서 보기 어려운 것이란디....)

 

다시 하늘은 개이고 우리들은 목욕탕에 몸을 담근다.

피로가 더운물에 녹아빠진다. 모두가 또 생기로 충전된다.

탕 안에서 '노두'님을 만나 이야기를 한다.

노두란 말은 징검다리를 뜻하는데, 내가 어렸을  때 한문선생님이 연然 글자를 쉽게 익히는 방법으로

'개犬가 달月을 물고 노두 ....를 건너간다' 로 외우라 하셨다.(아래 점 네 개는 징검다리, 노두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