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6월 20일

한국 최연소 주교 반열 오른 ‘컴도사’ 신부님

ㆍ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취임한 박현동 아빠스

가톨릭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한국 천주교회의 첫 남자 수도단체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도회로 널리 알려졌다. 이 유서깊은 수도원 대성당에서 20일 박현동(43·세례명 블라시오) 신임 수도원장의 아빠스 착좌 축복식 미사가 열렸다. 

아랍어 ‘아빠(abba)’나 콥트어 ‘아파(apa)’에서 유래한 ‘아빠스(Abbas)’는 ‘영적 아버지’ 또는 ‘영적 스승’을 뜻한다. 베네딕도 수도회에 속한 자치수도원의 수장에 대한 칭호이자 천주교회의 상급 장상(長上·어른) 직함이다. 이처럼 수도회 회원들의 영적 지도와 수도원의 총책임을 맡는 막중한 자리인 아빠스에 그가 40대 초반으로 선출돼 화제가 됐다. 

왜관수도원 원장은 당연직으로 북한 덕원자치수도원구의 자치구장을 겸하게 돼 있다. 자치수도원구 수장은 교회법상 ‘교구장 주교와 동등한 자격’으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 정식 회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이로써 박 아빠스는 한국 천주교 사상 최연소 아빠스이자 주교회의 최연소 회원이 됐다. 현재 주교회의 회원은 대주교 3명, 주교 19명에 박 아빠스를 포함해 총 23명뿐이다. 

40대 초반에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에 오른 박현동 아빠스는 “속도에 매몰되지 말고 중간중간 멈췄다가 다시 시작해야 영적으로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 40대 초반에 수도회 최고위직
트위터 등 세상과 소통 적극적
“아픔 치유하는 공동체 구현”

박 아빠스는 축복미사를 하루 앞둔 19일 오후,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수도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베네딕토 성인 규칙서에 ‘찾아오는 모든 이를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라’는 말씀이 있다”며 환대했다. 

“부족한 이 종을 공동체의 장상으로 세워주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뜻을 찾기 위해 공동체와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1909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파견한 두 명의 수도자가 설립한 서울 백동(지금의 혜화동) 수도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13년 아빠스좌로 승격돼 초대 보니파시오 사우어(신상원) 아빠스가 취임했다. 1940년부터 북한으로 옮겨 덕원자치수도원구를 맡아 함남 원산시와 안변·문천·고원군을 관할했다. 1949년 공산정권이 덕원수도원을 폐쇄하면서 북한을 떠나 1952년 왜관에 자리 잡았다.

“이 땅에 아빠스가 탄생한 지 100년째, 수도회가 왜관에 자리 잡은 것도 회갑년인 61년째 되는 해입니다. 이런 뜻깊은 해에 새로운 아빠스로 선출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지금이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수도원이 해오던 일들을 다시 점검해보고 현 시대에 교회와 세상을 위해 더 필요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겠습니다.”

박 아빠스는 “영적 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시대에 맞게 세상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아픔을 치유하는 일을 늘려 나가겠다”며 “세상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수도원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 아빠스는 울릉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다. 전기제품을 분해·조립하고 기계를 고치는 재주가 뛰어났던 소년의 꿈은 과학자였다. 중학생 때 울릉도에서 가장 먼저 컴퓨터를 장만했다. 대구고를 거쳐 경북대 응용화학과(공업화학과)에 진학했다. 1∼2학년 때 아마추어 무선통신(HAM)에 빠져들었다.

“무선통신으로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교신하려면 수많은 잡음과 소음 속에서 전해져오는 목소리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과 비슷하게 여겨집니다. 다시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공동체에 새로운 기운을 담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20일 왜관수도원 대성당에서 축복식을 가진 박현동 아빠스. | 연합뉴스

왜관수도원이 사목을 맡고 있는 대구 대명본당에서 교리교사로 활동하면서 출가를 결심했다고 한다. 1992년 왜관수도원에 입회했다. 2001년 종신 서원 후 그해 10월 사제품을 받았다. 2006년 로마로 유학해 교황청립 라테라노대에서 교회론을 전공하고 교황청 시성성 시복시성 청원인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2011년부터 한국남자수도회 장상협 수련자교육전문위원장, 한국 베네딕도회 양성 책임자 모임 위원장,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아 연합회 평의회 위원 및 시복시성 조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박 아빠스는 컴퓨터 실력이 전문가 수준이다. 1996년 국내 가톨릭단체 중 최초로 왜관수도원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 수도원 내 봉쇄구역의 사진을 웹 기반으로 찍어서 일반인 수도원 견학 행사 때 보여준 것이 계기가 됐다. 기업이나 대학에도 홈페이지가 드물던 시절이다. 요즘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수도자의 일상을 소개하는 등 바깥세상과의 소통에 적극적이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평양교구장),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함흥교구장)와 함께 북한 지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