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분원을 다녀와서

성소자 이정혁 토비야 형제

무엇보다 우선 입회전에 화순수도원을 꼭 가보고 싶다는 저의 작은 소원을 이루어주신 하느님과 분도수사님께 감사드리고 따뜻하게 환대해 주신 화순수도원 수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5월 성모성월에 그것도 성령강림 대축일에 방문하게 되다니 주님께서 안배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속의 아름다운 공동체였습니다. 이틀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은총과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화순수도원에 다녀와서 여기는 어땠고 저기는 어떻더라 하는것보다는 내면의 변화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보이는 풍경들, 수도원과 주변의 환경들, 다윗수사님의 가이드로 방문했던 고인돌 유적지와 운주사. 그저 눈으로 보이는 멋진 광경이 아닌 영혼 깊이 느껴지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왜 그토록 화순수도원을 가고 싶어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수도회 입회에 뜻을 두고 오랫만에 한국에 돌아온 순간부터 미국에 대한 향수병이 있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기도할때조차 뜬금없이 떠오르는 미국에 대한 생각들.. 

특히 뉴튼수도원과 가끔 방문했던 shrine들 그리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보았던 이름모를 지역의 어느 광경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왜관수도원에 찾아갔을때 뉴튼수도원의 본원이기도 하고 왜관이라는 지역이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기에 왜관수도원도 뉴튼같은 시골이겠거니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가 많이 실망하였습니다. 시골인줄 알았던 왜관이 제가 생각했던 침묵속의 고요한 시골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한국의 몇몇 성지들도 찾아가보고 요셉수도원도 찾아가보았지만 제가 기대하던 시골에는 미치지 못하였고, 그럴수록 미국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미국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마음을 달래보았지만 부르심이라는 한국으로 온 이유도 망각하고 '그냥 미국에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과 후회만 남을 뿐이었습니다. 간교한 사탄은 마음속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든다는데 저에게는 아마도 그 부분이었나 싶습니다. 화순수도원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요셉수도원보다 더 시골이라는 말을 듣고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순수도원에 도착한 순간 감탄사와 함께 주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마음속에서 흘러나왔습니다. "한국에도 이런곳이 있었구나~ 뉴튼수도원못지 않게 조용하고 예쁜 곳이구나~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신 하느님 저를 이곳에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왜 그토록 시골을 동경했는지... 그저 도시가 아닌 시골을 동경했다기 보다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환경, 가만히 있어도 침묵이 되고 관조가 되는 그런 환경을 동경했습니다. 여기에 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토록 침묵을 찾아 헤매고,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이면서도 제 마음은 그러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은 침묵하지 않으면서 외부의 침묵만 찾고, 마음은 아름답지 못하면서 외부의 아름다움만 찾아다녔던 것입니다. 마음이 침묵한다면 시끄러운 공사현장에 가서도 침묵할수 있고, 마음이 아름답다면 쓰레기더미속에서 피어난 한줄기 잡초를 보고도 아름다움을 느낄텐데 말입니다. 영적으로도 제가 바뀔 생각은 않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며 제가 주려고 하는 마음 없이 달라는 기도만 해왔습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마침 운주사를 방문하니 불교에서 쓰는 활연대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마음이 활짝 열리고 큰 깨달음을 얻는다." 옛 선승들의 깨달음에 비할 수 없지만 저에게는 소중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육조단경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고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하고 다른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 하였는데, 혜능선사가 말씀하시길 "너희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말씀의 씨앗이 내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잘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일생을 다해 마음의 밭을 갈고 닦는 것이 수도생활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

앞으로는 바깥의 침묵과 아름다움을 찾아다니기 보다는 내면의 침묵과 아름다움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당신께서 들어와 사시기에 합당하도록 고요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꾸겠습니다.

제 안에 거룩한 성체로 그리고 말씀으로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