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부르심과 그분을 찾음

세바치아노 보보 아빠스

이형우 시몬 베드로 옮김

1.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

수도 영성의 기본적인 특징들 중에 하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적 영성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영성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수도적 영성, 그리스도교적 영성 그리고 인간적 영성의 기본적인 특성들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성 베네딕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양성해 내는 분이다. 사실 베네딕도 규칙서의 긍극적인 목표는, 규칙서의 맨 첫머리에 “들어라”(Obsculta)는 말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자기 삶의 기초를 세우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생활의 기본적 규범으로 삼기로 작심한 사람들을 받아들여 그렇게 양성하는 것이다.

교회 역사를 볼 때, 수도생활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겠다는 갈망에서 생겨났다. 수도승생활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성 안토니오는 자기 영혼과 마음 안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수도생활을 하러 사막을 찾아간 분이다. 사막의 교부들의 생애에 관한 여러 문헌들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수도승이 되고자 할 때의 기본적인 요청이나 또는 수도승적 마음을 이미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는 요청은, “제게 한 가지 말씀을 주십시오, 제가 따라 살아야 할 말씀을 한 마디 해주십시오” 였다. 이런 요청을 하는 순간에 그 사람은 수도승이 되며, 이런 요청을 받은 원로는 그의 아빠스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생각되는 어떤 분에게 가서 자기가 따라 살아야 할 한 말씀을 얻는 이런 과정에서 수도승과 아빠스의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그외 다른 경우는, 같은 선상에서, 혼자서 광야나 산속 깊이 들어가더라도 그런 말씀을 성경에서 찾았다.

이런 유(類)의 요청에 이용된 성서 본문들이 많이 있지만, 전도서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성경 저자는 인간 사회의 여러 가지 가치에 대해 검토해 본 결과 아무 것도 항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말한 다음 끝에 가서,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 그분의 분부를 지켜라. 이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따라서 수도승적 영성의 근본 특징은 ‘듣는 자세’라고 하면 가장 안전하고 정통한 답변이 될 것이다. 들음은 어떤 명령에 순종하는 것 이상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들음은 정신의 습관적인 상태 또는 마음의 정립을 뜻한다. 이러한 들음의 자세를 지닌 사람은 명령을 받았을 때 두 말 하지 않고 순명한다. 그러나 명령이 있었을 때에만 순종하는 순명은 수도승적 순명이 아니라 군대식 복종이다.

수도승의 순명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말씀에 항구히 순종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순명이다. 이것은 시편 118편의 저자가 지니고 있는 태도이다. 수도승이 자기 영성에 상응한 기도를 하기를 원하면 율법에 관한 시편 제118편을 매일 바쳐야 할 것이다. 시편 저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되뇌이고 노래하고 받아들이고 간직하고 사랑하고 탐구하고 준수하고 찾는다. 매 연(聯)마다 듣고 있는 이의 영적 태도를 마음의 상태로 묘사하는 표현들이 후렴처럼 반복되어 나온다.

2. 하느님은 부르시는 소리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 수도승의 삶 그리고 인간의 삶을 위해 왜 그렇게 근본적인 자세가 되는가?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만일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나의 삶이 자기 말을 듣도록 설정되어 있다고 내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느님만이, 하느님의 말씀만이 이를 요구하실 수 있다. 하느님이 말씀하셨고, 말씀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아니 그 이전에 소리로 계시하셨다.

히브리인 사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하여 첫 곡식(=맏물)을 바치는 축제인 오순절에 토라 즉 율법을 최상의 맏물로 경축하였다. 그날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들려줄 수 있는 실재(實在)로 계시하셨다. 그날 하느님은 소리가 되셨다. 하느님에 관한 정의들이 매우 많지만, 실은 하느님에 관한 완벽한 정의는 있지 않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성서는 인간 생활에 구체적으로 유익한 하느님에 관한 계시들을 들려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처음 계시하셨을 때 소리를 통해 계시하셨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가 시나이산의 사건을 회상하는 신명기의 대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너희가 산기슭에 나와 서자 하느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너희는 천둥소리를 듣고 치솟는 불길을 보았다. 그러나 너희는 말씀하시는 소리만 들었지 아무런 모습도 보지 못했다.”

‘소리밖에는 아무 것도’라는 히브리식 표현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모세가 이 점을 매우 강조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형상들을 만들어 우상 숭배에 떨어질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목적이 있지만 또한 신학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은 ‘소리’이시라는 것이다. 이런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이시고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들음의 믿음이 되느냐 아니면 미신이 되느냐의 문제와 결부된다. 참된 종교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의 토대 위에 삶을 설정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것 외에 자신의 종교생활을 설정하는 사람은 미신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줄어드는 만큼 미신이 많아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잘 볼 수 있다.

수도생활 자체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종교는 하느님을 찾는 종교이다. 성 베네딕도는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에게 수도생활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줄 정도로 이것을 수도생활의 근본적인 요구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그분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신자나 수도자 할 것 없이 하느님을 찾거나 발견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불러주시고 찾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찾을 수 있게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찾으신다.

하느님이 먼저 인간을 찾으시지 우리가 먼저 그분을 찾는 것이 아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인간을 먼저 부르시고 찾으시는 분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했다. 누가 하느님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인간을 찾아오시고 발견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너희가 나를 찾으면 보게 될 것이다”라고 격려하신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이 발견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다. 만일 우리를 찾으시는 그분의 소리가 없었더라면 아무도 그분을 찾을 수 없고 발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부르시고 찾으시고 초대하시는 소리이다. 이 때문에 하느님은 듣는 사람에게 당신 말씀을 내던지듯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한한 열정으로 주신다. 유대교의 현대 예언자로 꼽히는 아브라함 헤셀(Abraham Heschel)은 그의 저서들 중의 한 책에 ｢인간을 찾으시는 하느님｣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파토스(pathos)는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열정이 아닌가!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이 주제를 처음으로 개발했다고 경의를 표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애원하는 소리가 되신 하느님’이라는 주제는 계시의 역사에 이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궁극적으로 울고 계시는 하느님을 뜻하며, 인간이 그분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돌아가신 하느님을 뜻한다. 십자가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연민이 최고도로 드러난 표지이다. 분명한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선물로 주시고 애원하는 소리가 되셨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러한 부르심과 호소는 하느님의 참 모습이며, 말하자면, 하느님의 마음이고 진정한 본심이며, 또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부르시는 소리로 제일 먼저 계시하셨다는 것 이상으로 그분에 대한 더 친밀한 정의(定義)이다.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듯이,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써 그의 하느님이 되셨다. 또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불러내시고 열 가지 말씀 즉 십계명으로 당신과 결합시키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이 되셨다. 육화하신 말씀의 모습은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세사의 거룩한 역사, 성 베네딕도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각자의 역사를 읽어야 할 열쇠가 된다.

만일 하느님을 찾는 인간의 역사로 성서를 읽는다면, 얼마나 비참한 역사가 되겠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 자신의 경험을 살펴보더라도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데에 실제로 바치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되고 얼마나 열심히 찾고 있는가?

어느 순간들에 하겠지만, 많이 한 날이라도 과연 몇 시간이나 되겠는가. 인간 역사를 인간이 하느님을 찾는 역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24시간 하느님을 찾을 가능성을 갖고 있는 수도승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을 진정으로 계속해서 찾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우리 인간의 참 역사는 인간을 찾으시는 하느님의 역사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위로가 되며,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시듯이, 성서에 제시되어 있는 위로인 것이다. 성서는 하느님 편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분의 역사이다. 또 하느님은 충실한 분이시며 인간을 찾는 데 지칠 줄 모르는 분이심을 성서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에게 위로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희망이 되는 것이다.

3. 무신론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성서에 계시하러 오신 첫번째 강림은 소리를 통해서였다. 감히 말하자면, 하느님은 우리가 들을 수 있게 말씀하시는 현실이 되셨으며, 인간 육신을 취하실 때에도 우리가 들을 수 있는 현실이 되셨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하느님이 다름 아닌 소리이시라면, 나는 내 앞에 계시는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듣지 않는 것은 내 삶에서 하느님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현대 무신론을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태도이다. 무신론의 정체는 하느님을 부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분노하면서 하느님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분명한 현존이 그들에게는 싸워야 할 대상이 될 지 모르지만 결국 그들은 그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무신론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된다. 신앙을 고백한다고 하면서도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무관심하고 냉담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느님께 대항해 싸우는 이들이 그분께 무관심한 이들보다 더 그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인간의 죄는 향략주의와 소비주의와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 안에서 하느님을 고려해야 하고 염두에 두어야 할 분으로 더 이상 여기지 않는 무관심주의이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의 기본 기도이며 예수께서도 상기시키셨던 기도는 기도라기 보다는 ‘들어라’는 하나의 명령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님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예수께서 이 문귀를 되풀이하여 말씀하셨을 때 이것이 첫째 가는 명령이라 하셨지 첫째 가는 기도라고 하시지 않았다. 이것이 첫째 가는 명령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명령’이라는 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을 들으라고 우리에게 명하시며, 이것은 성서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나오는 명령이다. 인간을 위해 창조주와 구세주가 되셨던 하느님께서 마치 인간을 잃어버리실까봐 두려워하시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과 더불어 우리에게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라는 들음의 기도를 가르치고 있다.

4. 삶의 한 가운데서 하느님을 되찾음

따라서 우리편에서 하느님을 찾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며, 하느님과 동화되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라는 말은, ‘당신이 저를 불러 주셨고, 저를 계속 부르시고 계십니다. 당신의 말씀, 당신 말씀의 메아리가 제 삶에 자석이 되나이다. 제가 당신 말씀을 따름으로써 당신을 찾으러 가도록 해주십시오’라는 뜻이다. 본질적으로는 하느님을 되찾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며, 수도승으로서 또는 봉헌자로서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증거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로써 하느님을 되찾는 것이 더욱 구체화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비(非)그리스도화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과장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음의 점들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 세상이 하느님의 죽음을 외치던 시대에는 단지 슬로건만으로가 아니라 하느님을 먼저 제거하였고, 그 다음 하느님 아들의 신적 차원을 없애버림으로써 그분을 제거하였고, 이제는 교회의 참된 본질에 관한 많은 용어들을 의식에서 말살시킴으로써 교회마저 제거하고 있다. 요즘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반(反)교회적 문화의 환경에 살고 있다. 일반적인 이론에 따르자면, 이것은 아버지를 말살하려는 획책이며 여기서 아버지 없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원천인 과거를 되돌아 보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아들도 없는 문화가 뒤따라 나온다. 제자들이 없는가 하면, 오늘날에는 아무도 자신을 제자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형제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각자는 자기 제안을 내놓지만, 다른 이들의 제안과 비교해 보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다른 이들의 제안을 반대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하느님의 죽음을 주장하고, 오늘의 문화와 문명 안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위기에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구조들을 바꾸기만 하면 생활이 바뀔 것이라고 한동안 외쳐대던 것과 같은 그런 구조들의 위기가 아니다.

이것은 분명히 구조들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에 관한 위기이며, 결국 신앙의 위기인 것이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들을 치료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되찾고, 세상 한가운데에 하느님을 다시 모셔옴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의 수도승들과 봉헌자들이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는 방법과 사명은 하느님을 우리 생활의 심장부에 모셔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다시 찾는 길을 알고 있음을 세상에 보여 주고, 생활의 모든 상황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재 증명해야 한다.

우리가 처해 있는 이러한 상황하에서 하느님을 되찾아야 하는 우리 소명의 일환으로써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기도해야 하는 지에 대해 언급하겠다.

1) 오늘날 우리는 오로지 스포츠를 위해 또는 관광을 위해 또는 그냥 즐기기 위해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먼저 각 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살게 하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사에 확고히 뿌리를 두고, 이에 항구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배정해 주신 지금의 현실에서부터 우리 자신을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 자리에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나를 수도원 안에, 또는 집이나 가정이나 공장이나 학교 등 어디든 간에 현재의 상황에 있게 하셨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무 것도 하느님 없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이나 만남이나 주변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단조로운 사물들에도 적응해야 한다. 내가 처해 있는 자리에서 하느님께 항구히 충실하는 것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고 성 베네딕도께서 말씀하신다. 수도승은 이 사실에서 출발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무슨 수도승이라는 말인가? 이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봉헌자이든 신자이든 한 인간이든 간에 자기 자신의 신원(身元)을 상실하게 되고, 자동적으로 허무하게 되고, 드디어 삶이 무익하다는 결론을 내려 자살에 이를 수 있다. 하느님이 주신 자리에서 충실하면서 하느님 면전에서 걸어가는 것이 제일의 기본 태도이다.

2) 하느님께서 나를 현 상황에 있게 하신 것은 무엇보다 하느님을 위해 또 내 형제들을 위해 그리고 그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나는 그들 중의 한 사람이며, 하느님 앞에서 그들의 소리인 것이다. 만일 내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잘 깨닫고 있다면, 그분은 형제들과 나와의 관계를 깨닫게 해주지 않으실 리 없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우리 삶 안에 자리잡게 해야 한다. 어떤 처지에 있는 사람이든 모든 이는 고통받고 일그러진 하느님의 모상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 모상과 유사함에 따라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지워버릴 수 없다. 인간이 무슨 짓을 다 해보더라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모상들에 대한 종교이다’라는 정의는 참으로 멋진 정의이다. 사실 죄로 일그러진 우리의 모습을 그리스도의 모습 안에서 다시 만드시기 위해 하느님의 모습이 육화하신 것이다. 구원 신학의 내용이 여기에 내포되어 있다. 인간의 모습을 고치시기 위해 하느님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 안에서 계시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기도는 이러한 모습들에서 우러나와야 하며, 그 모습들 중에 어떤 것도 멸시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내 주변에 있는 모습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들은 일상사에서 기도하도록 나를 일깨워주며, 하느님을 되찾고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가르친다.

3) 하느님께서 배정해 주신 환경에서 우리는 실제적인 무신론을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 대해 흥분해서는 안되며, 좋은 열정 때문이라도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 곳에 있게 하셨는지 모른다. 우리는 하느님을 배척하는 자들의 유혹과 광기와 신경질적인 반응에 맞서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을 배척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이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며, 미사와 이교적 생활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는 식의 생활을 해서도 안 된다. 그들의 광란에 맞서 대항해야 하지만, 우리 자신은 먼저 무신론자들의 태도, 비신자들의 태도,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지 않는 이들의 태도와 같은 생활태도를 버려야 한다. 우리가 과연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다는 말인가? 성녀 데레사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때때로 잠들어 계시는 것과 같이 혹시 그들 안에 잠들어 계시는 지도 모른다. 성모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 “마음 속 깊이 새겨두신” 것과 같이 주시하고 듣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형제들의 실제 사정을 다 올바로 이해할 수 없고 하느님만이 이를 알고 계실 뿐이다. “네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고 시편작가가 들었던 말을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이 우리에게 반복해서 말할지도 모른다. 막스주의, 소비주의, 출세지상주의, 부르주아주의, 세속주의 등이 계속해서 우리 귀에 대고 “너희 신이 어디 있느냐?”라고 외쳐 댈 수 있다. 그들과 직접 충돌하지 말고 먼저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평온과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증거해야 한다. 이것이 “너희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는 빈정거림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응답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을 계속해서 찾아야 하고, 적어도 그분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며, 하느님께서 거처하실 수 있는 자리를 우리 안에 마련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흥분하고 그들과 충돌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우리 역시 하느님을 우리 자신에서 몰아내게 되며, 하느님을 위한다는 그릇된 열성이 세상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대항하는 무기가 되어버릴 것이다.

4) 우리는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환경에서 우리의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만일 우리가 오늘만 특별히 이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일에만 완전히 몰두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에는 자기 생활의 전부를 일에만 몰두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더 이해받을 수 있다. 성 베네딕도는 일정한 시간에 노동을 하고 일정한 시간에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따라서 영적 생활과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한다. 기도는 내 일을 하는 데 힘이 되어 주고, 일은 내 기도를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기계나 생산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을 더 잘 만날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셨고, 목수로 일하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다. “지혜의 옥좌”이신 마리아는 가정의 어머니이셨다. 마리아는 가정의 어머니로 생활하시면서 동시에 하느님을 관상하시고 하느님께 기도하시는 데 있어 “지혜의 옥좌”이셨다. 그리고 요셉은 목수일을 하시면서 이 두 분을 보호하셨다.

5) 주님께서 정해 주신 여건에서 우리는 시간을 쪼개어 기도하게 된다. 이처럼 토막 난 기도라 하더라도 우리 기도의 목표는 사막의 은수자들이 지녔던 ‘계속 기도하는’ 목표와 같다. 나는 평신도들에게도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권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실 예수께서 이것을 모든 신자들에게 요구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항구하게 청해야 할 선물이며,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도들을 다 사용해야 한다. 묵주기도와 화살기도와 시편들 그리고 우리가 발한 서원에 대한 명상 등 모든 것이 계속해서 기도 중에 있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우리는 형제들 한 가운데서 하나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마카베오 시대에 오니아스가 예레미아 예언자께 한 찬사는, 그의 예언과 신탁의 능력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이분은 형제들의 친구로서 온 백성과 거룩한 도성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였다. 사실 예레미아 예언자는 자기가 받은 계시들을 상기시킨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을 상기시키고,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는 형제들이 겪고 있는 온갖 환난을 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간청함으로써 자기의 사랑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아토스산의 실바노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데에 온 생애를 바쳤는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자기 피를 주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로 열렬히 기도하였다. 이런 기도는 “당신을 위해 성모송을 한 번 바칠테니 가십시오” 식의 기도가 아니라, 형제들의 선익을 위해 완전히 몰입하는 생명의 기도이며, 그들과 마음을 함께 나누고, ‘나는 당신을 대신해서 내 생명을 내어줍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생명을 전해줄 때 비로소 우러나올 수 있는 기도이다. 이런 기도는 수도승들은 물론이고 신자들도 바쳐야 할 기도이다. 입술로만 하는 기도에 갇혀 있지 말고, 생활 전부가 ‘하느님의 일’(opus Dei)이 되고, 하느님을 섬김이 되며,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이 되도록 해야 한다. 수도원 안에서처럼 이런 기도는 삶 전체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런 삶을 그렇게 쉽게, 그렇게 빨리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놀라서는 안 된다.

5. 행동 중에 명상

이런 삶은 어떤 행동을 하면서도 명상할 줄 아는 생활이다. 우리는 기도를 어려운 것으로 여기거나, 하느님 찾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찾는 것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여러 가지 양분법적 사고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기도와 행동 사이, 기도를 하는 것과 실제생활 사이, 추상적인 이상과 생활의 경험 사이, 내면화와 인간 서로의 교류 사이, 수덕적 노력과 즉흥적인 표현 사이 등을 갈라놓는 양분법적 사고들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참다운 기도를 생활화할 때 이런 양분법적 사고들을 넘어설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셨듯이, 내적 생활과 활동 사이에 일치를 이룰 필요가 있다. “나는 신학생 때부터 매일 밤 그리스도 안에 내 삶을 일치시키기를 매번 다시 하였습니다” 라고 헬더 까마라 대주교가 말하였다. 따라서 기도 생활의 문제는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또는 언제 기도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하느님께 어떻게 이르게 할까, 언제 나를 하느님께 이르게 할까, 무슨 방법으로 나를 하느님께 이르게 할까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도의 어떤 단정적인 방법을 찾을 수 없다. 그분과의 만남을 늘 모색하고, 나를 당신께 봉헌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데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구체적으로 이르시는 길을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그리고 다른 이들 안에서 모색하는 데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웃 형제들을 나에게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따라서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영역 즉, 모든 실재에 깊숙이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찾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실존적 여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우리의 기도와 하느님을 찾음이 구체화되고 심화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과 사물과 사건들은 그 형태에 따라, 그리고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각기 거기에 맞는 유일한 기도를 바칠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봉헌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거두어 들여야 하며, 모든 상황과 만남과 사물과 사건들을 사랑의 봉헌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순간과 경험들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열어준다. 따라서 기도는 실재의 모든 순간마다 달라지게 되지만, 하느님과 만남을 심화시켜 주고 그 만남의 양상을 순탄하게 해준다.

이런 구체적인 상황을 존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기도를 바칠 수 있고, 하느님을 참으로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기도를 방해하는 장애들은, 하느님께서 내 앞에 전개하시는 사건들을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해 버리거나, 마음을 다해 그 깊은 뜻을 찾으려 하지 않거나, 자기 자신에 너무 집중되어 있거나, 주지주의에 빠져 있거나, 멋진 이상이나 말을 꾸며내는 데 정신을 팔고 있거나, 그럴싸한 기도를 하겠다고 연습만 하는 것 등이다. 우선 기도하는 기회들을 만들고 기도하는 훈련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시간경 전례들로 이를 이행하고 있다. 그런데 기도를 위한 기도의 연습만 하여 단지 준비로 끝나 버리고, 하느님 영역의 문턱 즉 그분과의 만남의 문간방에만 있다가 마는 사람은 불행하다. 기도를 할 때에나 실습할 때에, 우리는 기도 시간들 외에도 하느님을 모실 수 있도록 마음이 민감해져야 한다. 만일 기도의 실습들이 이런 효능을 지니지 못하면, 또 기도를 마쳤을 때 기도하기 전보다 더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더 흥분한 상태로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면, 그런 기도는 잘못된 기도이다. 왜냐하면 기도를 마쳤을 때 우리는 모든 면에서 더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수도승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는 미사 전에 아주 신경이 날카로워 다른 이가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는데 미사 후에는 모든 이를 부드럽게 대하는 아주 양순한 양처럼 되는 것이었다.

한편 기도를 연습할 때에는 아직 사랑을 지니고 있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이런 실습조차 하지 않으면 사랑밖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사랑에 들어갈 가능성마저 배제하는 것이다. 기도의 실습은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을 모셔들이는 것을 준비하고, 또한 당신 말씀을 주시고 어느 상황에서나 우리를 부르시면서 만나시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

6. 하느님께 몰입

이 때문에 하느님께 몰입될 필요가 있다. 인간이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께 완전히 몰입되게 하는 기도는 없다. 그렇지만 어떤 형태의 기도라도 우리를 하느님 안에 몰입하도록 이끌어 주지 못하는 기도라면 피상적인 기도이며 진정한 기도가 되지 못한다. 하느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본질적인 문제에 들어갈 때에 진정한 기도가 된다. 우리 각자가 처해 있는 실제적인 상황들에서 우리 자신과 모든 것을 하느님께 투사하려는 도약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데 지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지치실 때까지 항상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한 어떤 사람의 권고에 동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지치게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지치게 되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도한다는 것은, 더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열망을 지니고 하느님 안에, 가난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한 파리시(Faricy)신부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느님이 내 수준에 오시도록 끌어내릴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 수준에 올려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는가? 나는 달라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새로운 차원들｣이란 책을 읽고, “제가 어떠한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에도 그리스도께서 15분 후에는 오신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라고 쓴 편지를 내게 보내준 한 소녀에게도 동감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당신께 다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15분 동안 떠나 계셨으며, 그분이 우리를 떠나 계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영역에, 그분의 분위기에, 하느님의 생각에 들어가기 위한 섭리인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아버지, 제 영을 당신 손에 맡기옵니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르 드 후코 신부의 기도도 이와 같았다: “하느님, 아버지 손에 제 영혼을 맡깁니다. 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다해 아버지께 제 영혼을 드립니다. 저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을 아버지께 드리고, 무한한 신뢰로 또 어떠한 제한도 없이 아버지 손에 저를 맡겨드리기 위해서도 아버지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저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샤르 드 후코 신부는 “아버지”라는 말을 끝까지 믿었기 때문에, “아버지 손에 저를 맡깁니다” 라는 기도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틀에서 벗어 나와야 한다. “주님, 기도하는 것을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주님, 땅의 모든 사람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물에서 당신이 땅을 사랑하시고 그 안에 구체적으로 현존하신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라는 기도와 상통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진리 안에서 하느님을 찾을 때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